제주 가마오름 일제동굴진지, 어둠과 바람 속에 남은 전쟁의 기억

흐린 하늘 아래, 제주시 한경면의 완만한 들판을 따라 걷다 보면 낮은 언덕이 길게 이어집니다. 그곳, 가마오름 기슭에 이르면 풀 사이로 어두운 구멍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제주가마오름 일제동굴진지’라 새겨진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주변은 바람에 억새가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이 제주를 군사 요새로 만들며 조성한 지하 방어 시설 중 하나로, 현재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돌과 흙이 어둠 속에서 맞물린 그 공간은 차갑고 고요했습니다. 안쪽에서 스며 나오는 공기의 냄새가 깊고 오래된 기억처럼 느껴졌습니다. 한때는 전쟁의 긴장이 감돌던 장소가 지금은 제주의 들판 속에 묻혀 조용히 시간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1. 오름 아래로 이어지는 길

 

가마오름 일제동굴진지는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방향으로 향하다 보면 만나게 됩니다. 내비게이션에 ‘가마오름 동굴진지’를 입력하면 마을길을 따라 오름 아래 공터로 안내됩니다. 차량을 세우고 산책하듯 오르면, 바람이 불어오는 언덕 너머로 입구가 나타납니다. 초입에는 ‘국가유산 제주가마오름 일제동굴진지’라는 나무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 작은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길은 흙길이지만 경사가 완만해 천천히 걸으며 주변 풍경을 감상하기 좋습니다. 오름의 능선에는 억새가 빽빽이 자라 바람이 스칠 때마다 은빛 물결처럼 흔들렸습니다. 가까이 갈수록 공기가 차가워지고, 그 속에서 돌의 냄새가 점점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언덕의 평화로움과 동굴의 어둠이 묘한 대비를 이루었습니다.

 

 

2. 어둠과 침묵 속의 공간

 

입구는 사람의 어깨 높이 정도로 낮고, 돌과 흙이 섞인 벽면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안쪽으로 들어서면 바닥이 미끄럽고 공기가 축축하게 차 있습니다. 손전등 불빛을 비추면 굴의 방향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부는 폭 1.5미터, 높이 2미터 남짓의 통로 형태이며, 벽면에는 곡괭이로 파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일부 구간에는 천장에 환기구가 뚫려 있어 희미한 빛이 들어오고, 그 빛이 물방울에 반사되어 은빛 점처럼 반짝였습니다. 발자국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숨소리조차 벽에 닿아 메아리쳤습니다. 한참을 서 있으니 그 정적 속에서 과거의 긴장과 두려움이 밀려오는 듯했습니다. 어둠이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속에는 묘한 평온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3. 지형을 활용한 군사 구조

 

가마오름은 완만한 경사를 가진 오름으로, 바다와 내륙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지형적 특성이 있습니다. 일본군은 이를 활용해 오름 내부에 굴을 파고 탄약고, 병력 대기실, 통로 등을 설치했습니다. 내부는 바위층을 그대로 파내 만든 구조로, 일부 구간에는 돌기둥 형태의 지지대가 남아 있습니다. 천장 부분에는 작은 환기공이 일정한 간격으로 뚫려 있어 외부와의 연결을 유지했습니다. 안내문에는 “당시 제주 전역의 방어망 중 서부 해안을 담당한 주요 거점”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실제로 입구에서 서쪽으로 바라보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그 아래 용수포진과 송악산 방향이 이어집니다. 오름의 부드러운 곡선 속에 숨겨진 인공 구조물이 이렇게 단단하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4. 현재의 보존 상태와 관람 환경

 

현재 가마오름 일제동굴진지는 내부 일부 구간만 공개되어 있습니다. 붕괴 위험이 있는 구역은 철제 울타리로 막혀 있으며, 입구 앞 데크를 통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별도의 입장료는 없으며, 안내 표지판과 안전 문구가 곳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입구 주변은 정비가 잘 되어 있고, 벤치와 간단한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관리가 지나치게 인위적이지 않아, 자연과 유적이 함께 살아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비가 내린 다음 날에는 물이 고이지만 배수가 잘 되어 곧 마릅니다. 주변 들판에서는 감귤밭과 억새밭이 이어져 있으며, 가끔 바람이 불 때마다 흙냄새와 풀향이 섞여 들려왔습니다. 전쟁의 잔재가 남은 장소이지만, 지금은 자연이 그것을 감싸 안고 있었습니다.

 

 

5. 함께 둘러볼 수 있는 인근 역사 코스

 

가마오름 동굴진지를 둘러본 뒤에는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용수리 일본해군 통신소 유적’을 방문하면 좋습니다. 두 장소 모두 같은 시기에 조성된 군사 시설로, 비교해보면 당시의 전략적 배치와 기능 차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어 ‘차귀도 해안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전혀 다른 제주의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점심은 한경면 ‘용수포구’ 근처의 작은 식당에서 회국수나 고등어조림을 맛보는 것도 추천할 만합니다. 또한 인근 ‘송악산 일제동굴진지’와 연결하여 하루 일정으로 묶으면 제주의 서부 전쟁유산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전쟁의 기억과 자연의 평화가 교차하는 여정이었습니다.

 

 

6. 관람 팁과 느껴지는 인상

 

이곳을 방문할 때는 손전등이나 휴대폰 라이트를 반드시 챙기고, 운동화를 신는 것이 좋습니다. 내부는 어둡고 바닥이 미끄러우므로 천천히 움직여야 합니다. 여름철에는 습도가 높아 공기가 무겁게 느껴지고, 겨울에는 바람이 들어와 서늘합니다. 관람 중에는 돌벽을 손으로 짚지 않는 것이 안전하며, 조용히 걸으며 내부의 구조를 눈으로 따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밖으로 나와 숨을 고르며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두운 동굴과 대비되는 밝은 빛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그 순간,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한순간에 겹쳐 보입니다. 오래된 어둠 속에서도 시간이 흘러 평화를 되찾은 이 땅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마무리

 

제주가마오름 일제동굴진지는 단순한 전쟁 유적을 넘어, 인간의 어둠과 자연의 회복이 공존하는 상징적인 공간이었습니다. 바위와 흙, 어둠과 바람이 만든 그 조용한 공간은 과거의 긴장과 현재의 평온이 함께 머무는 장소였습니다. 동굴을 나서며 다시 들판의 바람을 맞았을 때,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묵직한 역사와 그 위를 덮은 제주의 푸른 하늘이 하나로 이어졌습니다. 그곳에는 상처도, 치유도 함께 존재했습니다. 오래된 어둠 속에서도 빛이 스며드는 순간, 이 땅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견뎌왔는지 실감했습니다. 바람은 여전히 오름을 스치며, 그 기억을 조용히 전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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